응급실로 두 명의 중환자가 실려온다. 한명은 추락으로 인한 부상을 당했고, 한명은 총상으로 인한 부상을 입었다. 두 환자 모두 빨리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쓸 수 있는 수술실은 하나다. 먼저 수술할 환자는 살릴 수 있지만, 두 번째 수술하게 될 환자는 살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과연 누구를 먼저 수술해야할까. 여기서 두 사람의 사연을 더 들어보면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 사람은 유괴범이고, 한 사람은 형사다. 두 사람은 격투를 벌였고 이 과정에 유괴범은 총상을 입고, 형사는 추락을 한 것이다. 그리고 유괴된 아이는 살아있으며 아이가 있는 장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누구를 살려야할까? 마치 마이클 샌댈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예화로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MBC <골든타임>에 등장한 에피소드다.
당사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진출처 : 드라마 방송장면 캡쳐
위 에피소드에서 의사들의 반응도 둘로 갈린다. 이민우 인턴은 두 사람 모두 비슷한 중상을 입었으므로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목숨을 건 형사를 먼저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항변한다. 그에 비해 강재인 인턴은 두 사람을 동일한 환자라는 시각으로 보면 유괴범이 더욱 위중하고 그에게는 유괴범의 목숨 뿐 아니라 유괴를 당한 아이까지 두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으니 먼저 수술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정의 순간 최인혁 교수는 총상환자(유괴범)를 먼저 수술하는 것으로 선택한다.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없는 이민우는 ‘증상은 비슷할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유괴범보다 형사의 목숨이 더욱 가치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최인혁 교수는 ‘총상환자는 수술 외에는 손 쓸 방법이 없고, 모든 목숨의 가치는 동일하며, 유괴범이 아니라 유순철 환자다’라고 답한다.
병원과 사회복지기관 모두 직접 사람을 상대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먼저 도와야할지의 문제가 종종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분명한 기준이 존재하며, 기준이 모호할 때라도 철학과 원칙에 따라 결정을 하기 마련이다. 또한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들도 병원 못지않게 다양하다. 알콜중독자도 있고, 전과자도 있으며,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성범죄자도 있다. 뿐만 아니라 말도 안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도 있고, 매사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도 있으며,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얌체 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가 가진 윤리적 잣대나 인간적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당사자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 것인가? 최인혁 교수와 강재인의 태도는 우리에게 하나의 힌트를 준다. 이들은 윤리적 가치를 개입시키지 않으며, 증상 외에는 결코 환자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유순철 환자는 유괴범이 아닌 총상으로 인해 위중하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중환자일 뿐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의 역할은 당사자와 함께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일이다. 물론 각 당사자에 따라 개성을 중하고, 변수를 고려할 수는 있으나 그에 대해 가치를 함부로 판단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우리에게 당사자는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할 파트너인 것이다. 어떤 당사자라도 ‘유괴범’이라는 편견이 아닌 인간 ‘유순철’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사진출처 : 드라마 방송장면 캡쳐
두번째 소개할 에피소드 역시 응급실에서 발생한다. 교통사고를 당한 중환자가 먼저 실려 간 병원에서 해운대세중병원으로 이송이 늦어지면서 환자는 이미 위급한 상황에 놓인다. 급히 수술실에 들어간 최인혁 교수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온 힘을 쏟지만 결국 환자는 사망한다. 최인혁 교수는 환자가 사망했다는 사실과 이에 원인이 된 허술한 응급처치와 환자이송체계로 인해 실의에 빠진다. 그럼에도 사망 사실과 원인 증상을 알리기 위해 보호자를 찾는다. 보호자는 초등학생 남매 둘 뿐이다. 사망한 환자(아이들의 아버지)는 고아이고, 아이들 어머니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출하여 친척조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과 대면한 최인혁 교수는 아마 더욱 깊은 상실감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최인혁 교수는 다시 마음을 추스린다. 그의 제자 이민우에게 "의사가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사망까지. 사망진단서 떼어주는 것까지. 필요하면 보험서류 만들어주는 것까지. 그리고 유가족에게 정중하게 대해주는 것까지. 모두 의사가 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한다.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릴 수 없듯이 사회복지사 역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개인, 가정,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당사자와 함께 노력해야한다. 최인혁 교수가 수술 후 환자의 회복력을 믿고 기다리는 것처럼 당사자의 힘을 믿고 당사자에게 보폭을 맞추며 기다릴 줄 알아야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일 역시 실패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책임감이 필요한 것이다. 환자 사망 후에 의사가 각종 서류절차를 통해 배려하고 유가족을 정중하게 대하듯, 사회복지사들도 비록 사업은 제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또한 어떤 경우에라도 당사자들을 정중하게 대해야한다. 의료행위와는 달리 사회복지는 결과 만큼이나 과정 역시 중요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사회복지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일 아닌가. 그렇기에 정중하고 인격적으로 당사자를 대해야하는 것이다.

사진출처 : 드라마 방송장면 캡쳐
드라마 <골든타임> 시청자 게시판에는 현실에도 최인혁 교수 같은 의사가 더 많아지기 바란다는 글들이 많다. 마찬가지로 주민들은 지역사회와 사회복지기관에도 최인혁 교수 같은 사회복지사가 늘어나기를 바랄 것이다. 이를 위해 최인혁 교수가 중증외상환자 치료에 열정을 쏟듯이 사회복지사 역시 개인, 가족,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열정을 쏟아야함이 마땅하다. 거기에 덧붙여 당사자를 아무런 편견 없이 파트너로 바라보고, 어떤 경우라도 당사자를 정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야 할 것이다.